"지리산 7암자"
삼정산 능선에는 오랜 세월 자리해온 암자와 사찰이 일곱개 있다.
그 이름 '지리산 칠(七)암자'다.
해발 1200m 높은 곳에 들어선 도솔암엔
홀로 수행하는 정견 스님은 직접 장작불을 때 생활한다.
상무주암은
고려 중기 보조국사 지눌이 '천하제일의 참선 암자'라고 일컬은 곳이다.
현재는 현기 스님이 홀로 34년째 은둔 수행 중이다. .
문수암과 삼불사, 약수암, 실상사을 지나면
함양 칠암자 순례는 마무리된다.
2014.7.12
도솔암에서 바라본 "지리산 천왕봉"
'금대지리'
금대암에서 보는 천왕봉과 지리능선이 천하제일이라고 한다
금대암에서 본 풍경이 장엄하고 화려하다면,
도솔암 에사 보는 지리능선은 안온하고 편안하기 그지없다
"도솔암"
해발 1200고지에 있다
신라시대에 지어진 것으로 알려진 도솔암은
사명대사의 법제자인 청매 스님이 머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전쟁 때 불탔던 것을 1986년경 지금의 정견 스님이 혜암종정을 모시고 들어왔다.
도솔암과 삼소굴의 현판은 혜암종정이 썼다
영원사 뒤쪽 산에는 도솔암을 중건한 청매조사 승탑이 있다.
마천에서 함양읍으로 넘어가는 재가 오도재인데,
청매조사가 도를 깨쳤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결제 중" 이란
안거(安居) 제도를 준수하는 중이란 뚯인데
"안거" 는
출가한 승려들이 한곳에 모여 외출을 금하고 수행하는 제도를 말한다.
"영원사"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신라시대 고승이었던 영원대사가 건립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한때는 너와로 된 선방이 100칸이 넘을 정도로 내지리에서는 제일 큰 사찰이었다고 한다.
고승들이 스쳐간 방명록이라고 할 수 있는 조실안록에
부용영관, 서산대사, 사명대사. 청매, 지안, 설파 상언, 포광스님 등
당대의 고승들이 109명이나 이곳에서 도를 닦았다는 기록이 있다.
내지리에서 가장 큰 사찰인 영원사는 여수 반란사건 때 반란군이
아군의 공격에 쫓겨 영원사에 들어와 아지트로 삼고,
건물 등을 작전상 불태워 버렸다. 이후 6.25동란으로 절은 완전히 소실되었다.
그 후 1973년 대일스님이 영원사의 수많은 내력과 전설을 듣고 복원불사를 시작해
인법당과 산신각을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영원스님이 영원사를 창건할 때 얽힌 "일화"
영원스님이 지리산으로 입산한 지 얼마 안 돼
현재의 영원사 부근에 토굴을 파고 8년을 계속 참선 수도를 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깨우침을 얻지 못해 수도처를 다른 곳으로 옮기려고 나섰다.
산길을 터벅터벅 걸어 내려오다 보니
한 노인이 물도 없는 산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고기 낚는 시늉을 하면서
영원스님을 향하여 “여기서 8년을 살며 낚시질을 했는데,
2년만 더 있으면 큰 고기가 낚일 것이다”며 혼잣말로 중얼 거리는 것이다.
영원스님은 이 말을 듣고 깨달은 바가 있어 다시 토굴로 돌아가 2년간 더 수도하여 큰 깨달음을 얻고 절을 지었는데,
그것이 영원사였다고 한다.
후세 스님들은 영원스님의 하산길을 막고 깨달음을 주었던 그 노인을
다름 아닌 문수보살 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양정마을"
"상무주암"을 향하여 ....
살살 고도를 높여 ...
"큰까치수영"
도로가에 "개망초"가 피어있다..
원추리꽃...
상무주암 가는길에서 "휴식"
시원한 "약수"
산수국
산삼 찾고 있는 형제님 ...
노루오줌꽃
"노루발풀"
상무주암 에 도착 ...
"상무주암"
‘무주(無住)’라 함은
불가에서‘일체의 경계에 머물지 않는 반야삼매의 경지’를 뜻한다.
집의 현판 ‘상무주(上無住)’의 글씨는
‘원광’이란 뚜렷한 낙관은 경봉스님의 글씨다.
암자 마당에 서면 지리산 주능선을 조망하는
외지리(外智異) 최고의 전망지이다.
고려때 타락한 현세를 벗어나
참된 깨달음을 얻고자 정혜결사운동을 펼쳤던
보조국사 지눌이 창건했고 깨침을 얻었던 곳으로 전해진다
전남 순천 송광사에 세워진
지눌의 보조국사비에는 상무주암의 기록있다
지눌이 옷 세 벌과 바리대 하나만 갖고
지리산을 찾아 상무주암에 은거했으니 경치가 그윽하여 천하 제일이며
선객이 거주할 만한 곳이었다
지리산서 34년간 수행 "현기 스님" “세상이 진흙구덩이라도 연꽃을 피워야”
스님이 상무주암과 인연을 맺은 건
197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리산에서 동안거(冬安居)를 하는 동안 반야봉의 아름다움에 매료됐다.
그는 “상무주암에선 반야봉이 정면으로 보이는데 참 좋다”며
“밤에 지리산의 고요한 어둠을 느끼며 명상을 하면 가슴속에 막혀 있던 게 확 뚫린다”고 말했다
"상무주암 해우소"
약수물
상무주암 담위에 "달맞이꽃"
"영원사" 에서 오는길
양지꽃
상무주암에서 문수암으로 ..
저멀리 "문수암" 이 보인다
"문수암 해우소"
해우소 에서 앉아 바라보는 경치가 얼마나 좋은지
뚫린 환기 구멍을 통해
바라보는 풍경이 그럴 듯하다
바위와 화학적으로 결합한 "문수암 법당"
"천인굴" 에서는 늘 마르지 않는 석간수가 흘러 나오는데
얼마나 시원한지
소름이 오싹 돋을 정도였다
맛있는 점심..
문수암
1965년 혜암스님(1920~2001)이 창건한 암자.
조계종 10대 종정인 혜암큰스님은 상무주암에서 용맹정진 하셨는데
그때 문수암을 창건하였다고 한다.
임법당으로 된 법당 입구엔 천인굴이란 굴이 있는데 깊지는 않지만
전란때 인근 마을 주민들이 피난을 왔던 곳이기도 하단다.
30여년간 겨울엔 물이 없어
상무주암에서 물을 떠다가 생활하고 있는 "도봉스님"
상무주와 문수암 편액은
통도사 "군자"이자 "영축산 도인"으로 불리는
경봉(원광)스님(1885~1969)께서 쓴 필체란다.
법명은 원광, 법호는 경봉이시다.
일광욕
"문수암" 에서 ...
"삼불사"
"삼불사 해우소"
오늘 은 자매님 이 컨디션이 별로 ..
형제님이 물을 맛있게 먹고 있는 모습을
부회장님 께서 체하면 어떠지 ...
결제중 입니다
삼불사
비구니 사찰인 삼불사는 절이라기보다는
깊은 산속 산골마을의 고향 집 같은 느낌이 드는 곳이다.
삼불사는 조선시대 창건한 절이라는데 정확한 기록은 없다.
지금은 비구니의 참선도랑으로
초라한 여념집 모습을 하고 있는
고지대의 절이다.
삼불사 앞 경고등.. ? ? ?
물레나물
좀작살나무
우산나물
약수암
남원 실상사의 산내암자로,
실상사에서 남서쪽으로 약 1㎞ 떨어진 지리산 중턱에 있다.
경내에 항상 맑은 약수가 솟는 샘이 있어
약수암(藥水庵)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1724년(경종4) 천은스님이 창건하였고,
이후 서영대사가 중수하였다.
1901년 지월대사가 중수하고,
1918년 대유스님이 보광전을 다시 세웠으며,
1937년과 1974년에도 중수하였다.
현재 약수암은
목조 팔작지붕 집인 보광전과 목조 요사로 구성되어 있다
"약수암 해우소"
"루드베키아" 와 "보광전"
.
약 수
넘침도 모자람도 없는 / 그만큼만 두고
나머지는 가두지 않고 / 흘러 보냅니다.
욕심으로 채우지 말아야 / 고여 썩지 않고
"맑고 향기로운 삶" 이라는것을 보여주는 묵언 입니다.
"약수암" 에서 임도 길 2Km 걸어서 "실상사" 까지 ...
실상사 (實相寺)
신라 흥덕왕 3년 (828년)에
증각대사님이 9산선문의 하나인 실상산문을 개산하면서 창건했다.
이곳에 절을 세우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정기가 일본으로 가 버린다는
풍수지리설에 따라 절을 세웠다고 전한다.
정유재란 때 완전히 폐허가 된 것을 조선 숙종 26년(1700년)에 다시 지었으나,
고종 19년(1882년)에 거의 불타 버려 일부만 남게 되었다.
현재 통일 신라 시대 작품으로
국보 제10호인 높이 약 5m의 백장암 3층석탑과 보물 11 여점을 포함
단일사찰로는
가장 많은 17점의 지방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실상사 해우소"
"세월호 노란리본"
벼에 꽃이 피었어요
"우렁이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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